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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임상에 '일희일비' K바이오..인재육성이 名藥"

2019.11.04

바이오 파이프라인 10개중 9개는 실패
임상 성패에 기업가치 요동치는 게 현실
제약•바이오株, 불법 공매도 뿌리 뽑아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바이오 윤리와 제도, 경제론 등이 일체화되면 적재적소에 약을 내놓을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처럼 '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려면 바이오 경제ㆍ정책 전문가를 육성할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의외였다. 은퇴를 앞둔 경영자 입에서나 나올 법한 '인재육성'을 아직 젊은 그가 언급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그룹 지주사) 대표이자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47)은 그렇게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최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집무실에서 만난 임종윤 대표는 "중국이 혁신산업에서 앞선 국가들을 따라잡은 성공 요인 중 하나가 학교"라며 바이오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재 양성 없이는 K바이오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K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열기도 내심 우려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빗대어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성패에 기업가치가 요동치는 현실을 경계한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제약ㆍ바이오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부정한 공매도 세력의 놀이터로 변한 지 오래"라며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담=이정일 4차산업부장, 정리=박혜정 기자]

- 제약바이오시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으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대단한 잠재력과 혁신의 필요성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한국은 해외에서 파트너링, 허가, 연구, 생산을 진행 중인 많은 혁신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 강국이다. 연구개발(R&D), 신약 허가, 임상시험 등 선진국과의 제도적 '언어'도 같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혁신 모델, 공정하고 도덕적인 연구를 무기로 앞서 나가야 한다. 디지털 의료, 임산케어, 보건환경, 헬스케어 기반 생활 설계 등 진출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역량있는 기업들이 적극 도전해야 한다.

-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 능력에 의구심이 드는 일부 기업 사례가 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많다.

기업이 확대 발표한 내용(공시)과 이를 과잉 해석한 미디어의 파급 효과가 시장의 불신을 부추겼다고 본다. 세계적으로도 대형 계약 체결이나 계약 종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 기간 집중적으로 단기 차액을 노리는 투기도 성행한다. 파이프라인을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투자를 하고 투자금을 거둬들이는 형식은 1980~1990년대 태동한 PF와 비슷하다. 학회장이나 투자유치 행사는 프로젝트를 사고 파는 시장이 됐고 전략적으로 투자 시점을 조율해 치고 빠지는 '과학자 사업가'도 등장했다. 때문에 바이오벤처의 주가는 파이프라인 소식 하나로 왜곡된다. 한미약품 등 제약주도 그렇다. 투자를 받아 혁신산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기업에 금융 부담 등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K바이오의 미래' 인재 없인 장담 못해
포항시•포항공대와 혁신학교 설립 논의
바이오 경제•정책 전문가 키워나갈 것

-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바이오산업은 악질적이고 부정한 공매도 세력의 놀이터로 변한 지 오래다. 찬성 측에서는 공매도가 시장 유동성에 도움이 되고 선순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규제가 많은 유럽의 경우 공매도는 하루 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장치도 없다. 바이오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공매도를 금지하고 부정한 공매도 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당장 공매도를 막은 다음 시장이 위축되는지 등을 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 국내 바이오업계가 임상시험 실패 소식으로 많이 위축돼있는데.

바이오 특성상 파이프라인 10개 중 9개는 실패하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제약사의 경우 파이프라인이 연간 200여개, 많은 곳은 300~350개가 있다. 확률적으로 매일 하나씩 임상시험에서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 임상시험은 회사가 앞으로 5년간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옵션일 뿐이다. 비만 치료제 임상시험에 실패했다면 그건 사업부의 실패다. 반대로 임상시험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허가 후 제품을 출시하고 얼마나 매출을 올릴지가 중요하다. 유용한 기술과 이를 실현시키는 사람, 상용화 이후 시장에서의 필요성이 일치돼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선진국과 비교해 K바이오의 위상은 어느 수준인가.

냉정하게 한미약품과 K바이오의 파이프라인 가치를 판단해본다면 10~15년 전 일본과 비슷한 지점에 와 있다고 본다. 일본의 톱 제약사 매출과 시가총액은 30조원대 규모고, 혁신 바이오 업종에서 나스닥 시가총액 규모도 30조원대를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벤처 규모의 연구를 하는 회사, 글로벌 규모의 단일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이 위치에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K바이오 거품론이 이를 염두에 둔 평가일 수 있다.

-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결국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바이오 경제, 정책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문학교를 세우려고 한다. 현재 포항시, 포항공과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소규모 바이오헬스 혁신학교를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커리큘럼을 만들 수도, 별도의 교육기관(전문대학원)을 설립할 수도 있다. 커리큘럼은 단순 바이오신약 개발이 아니라 윤리, 제도, 법, 헬스케어시스템, 경제론 등 인문학적인 부분에 집중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제한적의 건강보험 재정, 정책 우선순위에 맞춰 설계된 약을 개발하면 산업, 정책 등 전방위적으로 옥석이 가려지게 된다. 그리고 신약 개발을 위한 질 좋은 데이터인 논문도 축적된다.

- 한미약품그룹이 그리는 바이오사업의 청사진은.

2~3년 전 한미사이언스의 관계사인 코리그룹을 통해 바이오뱅크를 주제로 연구를 하면서 각국의 대학병원과 현재 의약품 치료 말고 그 윗 단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봤는데 결국 맞춤형 치료였다. 맞춤형 건강관리를 돕는 '토털 헬스케어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도 여기서 출발했다. 현재의 약품은 평균인데, 맞춤형 치료를 할 때 가치가 있다. 또 하나, 환자에게 약뿐만 아니라 전방위적 케어를 해 치료율을 높이는 옴니버스 치료다. 병의 근원을 연구하고 예방법을 찾는 것, 치료부터 완전한 건강을 되찾는 일까지 포함한다. 한미사이언스는 메디컬 컨설팅에서, 코리그룹은 맞춤형 건강관리ㆍ예방ㆍ치료 등의 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 능동적인 지주사를 표방하는 한미사이언스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주사는 투자보다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데, 한미사이언스는 자체 사업을 병행하는 혼합지주회사 또는 영업지주회사의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순히 관계사의 브랜드 로열티 등으로 매출을 올리지 않고 능동적인 신사업 개발 등을 지향한다. 한미약품이 의약품에 집중한다면 한미사이언스는 이를 확장, 진화하는 것을 방향키로 잡고 있다. 특히 바이오산업의 과제인 메디컬 컨설팅, 헬스케어 서비스 신사업을 준비 중이다.